[제자훈련] 162호 - 물질주의에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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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신용 카드 사용으로 대표되는 소비지상주의가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했습니다. 1970년도 미국인들의 신용 카드 부채액은 50억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25년 뒤인 1995년도의 총체적인 신용 카드 부채액은 2천 퍼센트 증가한 3,950억 달러에 달하여 부채곡선이 거의 수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그리고 불과 2년 뒤인 1997년의 신용 카드 부채액은 600억 달러나 증가하여 4,550억 달러로 추정되었습니다. 오늘날 신용 카드 한 장당 평균 부채액은 7,000달러이고 평균 이자율은 18.9%입니다. 미국 가정은 평균적으로 열 장의 신용 카드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통계상으로 미국의 신용 카드 회사들은 평균적으로 한 사람에게 우편으로 일 년에 7번 정도 카드 발급을 권유했습니다. 게다가 이 통계에는 전화로 요청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터무니없이 높은 신용 카드 이자로 인해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장기간의 종속 상태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자율 14.99%로 15,000달러를 차용하여 매달 최소한 200달러씩 갚는다고 할 때 - 만일 다른 부과조건이 하나도 없는 경우 - 그 빚을 다 갚는 데 222개월 또는 8년 반이 걸립니다.

2002년에 미국인들은 신용 카드 이자로만 대략 650억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이것은 주택융자금, 자동차 할부금, 학생들의 등록금 융자액에 대한 이자나 공과금과 전화요금이 제외된 금액입니다. 미국인들은 철저한 소비지상주의자들입니다. 사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소비주의적입니다. 로드니 클랩은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에 기고한 ‘악마가 비자카드를 발급받는 이유’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장사꾼들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하여 극장에 가는 사람들은 ‘관객’이 아니고 ‘소비자’다.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학생들’이 아니고 ‘교육 소비자들’이다. 의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환자’가 아니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예배자’가 아니며,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독자’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가 ‘소비자’일 뿐이다.

존 스토트 목사는 우리가 물질만능주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서구 문화가 18세기와 19세기에 성행한 노예제의 죄악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그 시대를 돌이켜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노예제가 얼마나 사악한 제도인지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놀랄 뿐입니다. 아마도 우리 후손들 역시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자신들을 파악하지 못했을까?”라며 똑같은 당혹스러움으로 우리 시대를 평가할 것이라는 게 존 스토트 목사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켄트 휴즈가 그의 책 “구별하라”(사랑플러스) 2장에서 다루고 있는 “물질주의”에 대한 문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재물 사용과 관련된 문제점

그리스도인들 역시 전반적인 물질만능주의 문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통계가 이를 입증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의 소비 습관이 비그리스도인들의 소비 습관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비 습관 중 다른 사람을 위한 지출은 평균적으로 3% 미만입니다. 놀랍게도 세례 받은 성인 그리스도인들의 8%만이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활동보다 오락 활동에 7배나 많은 돈을 소비합니다.

우리의 물질관이 세속 문화와 전혀 다르지 않다면 우리가 그 문화를 향하여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만일 우리가 물질만능주의 문화 위로 높이 솟아오르지 못한다면, 이 세상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소돔의 것을 추구하며 산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언덕을 바라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질만능주의에서 구별된 우리의 거룩함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거룩함으로는 단 한 사람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교회의 과업은 부패되어 가는 것을 구조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마음이 땅의 것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 즉 하나님 우편에 앉아 게신 그리스도를 갈망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흔쾌히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 자신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450개의 성경구절이 부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돈 문제는 우상 숭배 다음으로 지배적인 모티브입니다. 돈의 주제를 다루지 않고는 성경 말씀을 신실하게 전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과 지옥보다 돈에 대한 말씀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분명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랜디 알콘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습니다. “돈은 올바른 주인을 만나면 좋은 종이 되지만 돈 자체로는 끔찍한 주인이 된다. ... 돈은 일시적으로 나의 통제 하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돈을 생각할 때는 내가 조금이라도 주의를 게을리 하면 나나 다른 사람들에게 덤벼들 힘이 있는 야수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러면, 재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돈이 당신에게 속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신학자 자크 엘룰은 돈이 우리 삶에 부과하려고 하는 힘을 패배시키는 유일한 길은 돈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을 불경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모든 힘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불경스럽게 만드는 것은 돈에게 있는 성스러운 특성을 뺏는 것이다. ...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돈에 대한 최고 수준의 모독 행위이다.” 나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돈을 나누는 것은, 돈이 갖고 있는 신적인 힘을 지속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규칙적으로 그리고 후하게 기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돈이 당신의 삶에서 신이 아니라고 선언할 때 우리는 돈이 가진 권세를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투자한 돈은 유일하게 언젠가 당신이 다시 보게 될 돈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중요한 원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소비주의의 덫에 걸려 있는 사람들은 청지기 역할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 그분과 함께 공동상속자임에 동의하였고, 우리를 위해 예비된 장소를 받아들였으며, 우리를 위해 쌓아 놓은 보물을 받아들였고, 면류관을 인정하였으며, 그리스도와의 공동 통치에 찬성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승인을 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람들의 물질만능주의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만일 복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물질 만능주의라는 암으로부터 해방된다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물질만능주의 문화 위로 솟구쳐 날아오를 수 있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줄 복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제 1년의 훈련을 마무리해 가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물질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선한 곳에 활용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에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세상의 매력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날의 복음주의 교회에서 부족한 것은 도덕적, 영적 가르침이 아니다. 문제는 교회가 이 시대의 비기독교적인 사상과 변질된 도덕성에 의해 오염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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