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돈암동교회 제자훈련 개강예배설교 6 - 한태수 목사

1995. 9. 17 제목 : 평신도여, 깨어나라 본문 : 로마서 13:11-14 평신도란 "깨어 있는 자"란 뜻입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는 자"가 아니면 평신도가 아닙니다. 깨어 있어야 할 자가 깨어 있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그는 그 이름에 합당 한 자격을 박탈당한 자입니다. 평신도가 깨어 있지 못하면 "병신도"가 됩니다. "잠신도"가 됩니다. 운전을 하다가 졸든지 잠들어 버리면 어찌됩니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요. 실제로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이 대형교통사고의 주원인입니다. 운전자가 깨어 있어야 하듯 평신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비참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의 배후에는 졸고 있는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졸고 있는 동안 마귀는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악이 범람합니다. 불의가 판을 칩니다. 인간의 생명이 하찮은 것에 유린당합니다. 자기 자시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의 올무에 걸려듭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기의 덕을 더 앞세우며 잠꼬대를 합니다. 잠꼬대를 사실처럼 떠들어댑니다. 진리를 왜곡해도 잘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비수로 찔러도 아픔을 모릅니다. 옷이 벗겨져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현대신학자 폴틸리히는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 중에 10%는 잠들어 있고 80%는 졸고 있으며 10%만이 깨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80%의 졸고 있는 사람을 깨워야 교회에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깨어있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졸고 있는 그대를 향하여 "깨어나라"고 외칩니다. 1.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11절에는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를 분별하여 보십시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건만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무감각하게 살아갑니다. 너무 늦기 전에 지금 일어나야 합니다. 깨어 활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이 가까이 왔습니다. 심판이 가까이 왔습니다. 세계에 일어나는 징조를 보십시오. 우리 몸과 그 상태를 보십시오. 삶의 불확실성을 보십시오. 지금은 분명 자다가 깰 때입니다. 갑작스런 심판의 순간이 오기 전에 깨어 준비합시다. 2. 깨어난 자들은 잠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낮에 입어야 할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말입니다. 그 옷은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벗어 버려야 할 옷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두움의 일입니다. 어두움의 일은 부끄러워하는 것들입니다.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들입니다. 엄청난 손실이 있을 것을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옷은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모든 부끄러운 부분이 가려집니다. 그 어떤 공격에도 보호를 받습니다. 그 분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 옷은 빛이 나서 빛의 갑옷이 됩니다. 이 옷을 입은 자는 신분이 달라집니다. 품위가 달라집니다. 그 옷을 입는 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싸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3. 새 옷(주 예수그리스도를 옷 입음)을 입은 자들은 단정히 행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집니다. 잠옷을 입고는 거리를 활보할 수 없지요. 예비군복 입으면 예비군처럼 행동합니다. 새 양복을 입으면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새 양복을 입어 보십시오. 훨씬 다른 품위 있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는 단정히 행해야 합니다. 방탕과 술 취할 수 없습니다. 술에 취해 방탕한 생활을 하면 어떤 일도 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도 벗어버립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오직 단정히 행합니다. 숨길 것이 없는 품위 있고 고결한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은 평신도 주간입니다. 이름에 걸맞은 평신도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나야 합니다. 깨어있는 자만이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