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353호 - 목회자 :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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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2012년 7월 9일
 
 

353호

목회자 :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자
     

여러 교회나 단체에서 소그룹 리더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구역장, 순장, 리더, 헬퍼, 모임장, 섬김이 등등 다양한 이름에 의해 규정되고, 그들에게 기대되는 역할도 조금씩 다르고, 그들이 섬기는 소그룹의 크기도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역은 한 단어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규정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단어는 바로 “목회”입니다.

소그룹 리더들은 자신이 행하는 사역을 “목회”라는 단어로 부르기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해 보십시오. 맡은 몇 명의 영혼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거나 공부를 인도하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축복하고 그 모임을 이끌어가는 사역을 한 단어로 규정할 때 “목회”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요? 전 교인이 10명도 되지 않는 개척교회나 농어촌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는 “목회”를 감당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왜 내게 맡겨진 소수의 영혼들을 이끄는 것을 “목회”라는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단 말입니까?

내게 주어진 사역이 바로 목회임을 인정한다면 이 사역이 가진 중요성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작은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는 작은 목사이고 대형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는 큰 목사라고 할 수 없듯이, 내가 맡고 있는 소그룹을 섬기는 것은 결코 한 교회를 목회하는 것보다 작은 사역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소그룹 리더가 가져야 할 자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섬기는 소그룹이 있다면, 내가 생계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세상에서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나는 목회 사역으로 부름 받았고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물론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목회자는 결국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24-29에서 목회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24절)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29절)
어쩌면 바울이 개척한 교회 중에는 당신이 지금 섬기고 있는 소그룹보다 더 적은 숫자의 사람들로 시작한 교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한 번도 자신의 정체성을 “수공업자”로 규정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교회를 섬기는 사도였고, 그리스도의 종이었고, 목회자였습니다.
어쩌면 소그룹 리더야말로 목회 사역에 가장 적합한 모습을 갖기에 좋은 위치일지도 모릅니다. 소그룹 리더는 “청중”에게 관심을 갖기보다는 “각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바울의 목회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28절)
이처럼 “청중”이 아닌 “각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목회 사역이 실로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여름 기간에는 소그룹이 모이지 않는 방학 기간을 갖는 교회가 많을 것입니다. 이 여름을 그저 휴식의 시간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는 기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소그룹 리더로서의 자부심은 곧 내가 목회를 감당하고 있으며, 이 사역을 통해 내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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