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424호 - 저항 세력을 포용하는 건강한 리더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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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사에 의하면, 어느 조직이든지 어떠한 새로운 것을 접목하려고 하면 그것에 대해 16%의 사람들은 일단 저항하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이 자료에 의하면, 이들 16%의 저항자들이 리더의 주장에 따라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들과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조기 수용자들보다 약 4배 이상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건강하고 영향력있는 리더는 이들 저항 세력을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들에게 끝까지 시간과 기회를 주면서 마침내 그들과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건강하고 영향력있는 리더가 되려면 저항 세력을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종대왕과 최만리

저항 세력을 포용하면서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던 리더의 모델은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한글 반포를 꼽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끝까지 반대했던 인물이 바로 집현전 부제학을 지낸 최만리였습니다. 당시 최만리는 좋든 싫든 조선이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조선의 현실을 감안하면 중국과 문자가 같은 것이 국익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최만리는 군신관계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자신의 반대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한 예로, 최만리는 한글 창제 반포의 부당함을 고하는 상소문을 세종대왕에게 올리면서 "어찌 예로부터 시행하던 폐단 없는 글을 고쳐서 따로 야비하고 상스럽고 무익한 글짜를 창조하시나이까......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옳은 점을 찾아볼 수 없사옵나이다"라며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을 거침없이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이 상소문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하는 일은 야비하고 상스럽고 무익한 일이었고, 그것은 곧 임금에 대한 모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상소를 대하는 세종대왕의 태도입니다. 물론 세종대왕의 마음이 마냥 좋을 리는 없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최만리를 불러서 크게 호통하며 한글을 창제하게 된 자신의 마음과 동기를 몰라주는 신하를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감히 임금을 모욕하는 것과 같은 상소문을 올린 신하를 임금의 권위나 권력으로 억누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신하와 끝까지 논쟁하면서 최만리에게 자신의 의지와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론 논쟁이 너무 격렬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러다 최만리가 무슨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절대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최만리도 대단하지만, 그런 신하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끝까지 논쟁하며 기회를 준 세종 대왕의 인내심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세종대왕과 최만리의 논쟁은 끝내 최만리가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종대왕이 최만리를 내쫓은 것이 아니라, 최만리 스스로 임금의 뜻을 받들 수 없어서 신하의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 또한 불충한 태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그런 최만리에 대해 조금도 불이익을 주거나 징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만리가 관직에서 떠난 후, 세종은 3년이나 집현전 부제학의 자리를 공석으로 두면서 최만리를 그리워했습니다.

 진심을 읽으라

세종대왕이 최만리에 대해 이처럼 끊임없이 기다리고 기회를 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바로 세종 대왕이 최만리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만리가 세종대왕의 뜻에 그처럼 강력하게 반대한 이유는 바로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리학자였던 최만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선진 문물과 사상을 받아들여 빨리 조선의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최만리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문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하의 입장이었고, 임금 세종의 입장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백성을 바로 통치할 수 있는 도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반 서민들은 방을 하나 붙여도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백성을 바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통일된 문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것만 봐도 우리는 세종대왕의 생각을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최만리에게 수없이 기회를 준 것은 바로 그런 임금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최만리는 끝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종대왕의 곁을 떠났습니다. 이런 최만리의 태도에 임금으로서 세종대왕이 불쾌하게 여길법도 하건만, 오히려 세종대왕은 최만리의 빈자리를 허전해하며 그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최만리는 나라를 위해 임금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저항 세력이 되기로 결정했음을 세종대왕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종대왕에게 있어서 최만리는 그 누구보다도 귀한 충신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의사 표현이 자유로운 조직이 건강하다

오늘날 조직사회에서 직장 상사나 최고 권력자의 생각에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직장 상사가 갖고 있는 권력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보다는 그냥 상사의 뜻에 맞춰주는 것이 오늘날 조직 사회의 현실입니다. 물론 때로는 리더의 의견에 힘을 모아서 함께 움직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리더의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조직은 결코 건강한 조직이 아닙니다. 이런 조직일수록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익이나 이해타산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리더의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더라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데, 그것은 리더의 뜻과 생각에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대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조직일수록 리더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 조직은 리더 한 사람의 생각과 명령대로만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직은 결국 머지않아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조직이 되려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내놓고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생각에 심도깊게 비판할 수 있는 문화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개인의 유익을 추구하기 보다 조직과 조직의 목표 실현에 맞춰져 있다면, 얼마든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서로 실랄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의 생각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리더는 이런 저항 세력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주장을 들어주는 인내심을 보여야 합니다. 의사 표현이 자유로운 조직을 만드느냐 아니면 사람들이 모두 리더의 뜻과 생각에 따라오기만 하는 조직을 만드느냐는 전적으로 리더의 몫입니다. 리더가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자세를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조직의 의사소통 문화는 달라집니다. 당신이 이끄는 조직 안에는 반드시 리더인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저항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당신과 당신의 조직의 건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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